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6.25 전쟁/전쟁의 전개 (문단 편집) === 미군의 연패(連敗) === 스미스 대대가 패퇴하고 나서야 모(母) 부대인 미 제24보병사단이 투입되었다. 그러나 오산-죽미령 전투를 시작으로 미 24사단은 무참한 피해를 입어가면서 전투마다 패배를 거듭했다. [[평택-안성 전투]], [[천안 전투]], [[전의 전투]], [[대평리-공주 전투]]등의 지연전을 살펴보면 T-34 전차가 정면에서 돌파전으로 하거나 견제를 하는 사이에 북한군이 우회를 해서 반포위나 포위를 하는 동시에 후방 보급로를 차단하고 통신선을 절단한 후 각개격파를 하는 식으로 미군을 말 그대로 발라버리는 전투를 수행한다. 덤으로 대전차지뢰를 깔아놓아도 피난민을 가장한 스파이로 대강 위치를 파악한 후 밤중에 모조리 지뢰를 제거하거나 신관을 분리해놓아서 T-34 전차가 지뢰밭을 고속으로 돌진하면서 통과하는 바람에 미군이 대처할 시간이 없어서 사상자가 다수 발생하였다. 깜짝 놀란 미국은 일본에서 [[M24 채피]] [[경전차]]대를 부랴부랴 보냈지만 '''또 발렸다'''. 경전차로서 성능은 좋았지만 그게 T-34같은 중형전차와 정면승부가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었으며 주포도 [[75mm 전차포 M2–M6]] 계열인 M5라서 2차대전 유럽전선 기준으로 이미 대전차 성능이 부족한 편에 속했다. 그래서 T-34 1대가 전투 중 궤도가 망가지는 등의 사유로 전투불능에 빠지는 동안 M24는 7대가 완파되는 사례가 나타난다. 미군이 머리를 짜내보니 T-34/85 전차를 상대할 수 있는 미군 전차포는 [[M4 셔먼]] 전차의 76mm 포와 [[M26 퍼싱]] 전차의 90mm 포였는데, M26 전차는 일본에 없었고 M4 전차도 일본의 미군 공창에 조립하다 만 상태로 있는 것까지 탈탈 털어서 7대가 전부였다. 헤집어 찾다보니 먼지가 쌓여있는 소수의 퍼싱을 발견했지만 도저히 가동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대전차화기로는 개발은 해놨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는 바람에 필요가 없어 양산을 하지 않은 M20 3.5인치 RKT 슈퍼 바주카나 되어야 T-34/85를 격파할 수 있었다. 이 무기들을 부랴부랴 미국 본토에서 실어오는 동안 미군 24사단은 겨우 공수한 슈퍼 바주카 하나 들고 버티다가 대전에서 하루만에 인민군 3개사단에 포위당해 박살나버렸다. 물론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미군 24사단의 화력은 여전히 막강했겠지만 그 동안의 지연전에서의 손실과 장비 상실, 대전차화력의 답없음 등의 악재가 터졌고 대전 전투 초기에 주력 방어부대들이 방어선을 버리고 보문산으로 철수하는 등의 사태가 터지면서 병력 부족에 화력 부족까지 발생하여 말 그대로 궤멸이라는 사태가 터지고 만 것이다. 실제로 대전에 남아있던 미군이 잔여 포병부대를 모두 합해서 혼성포병대를 만들어서 북한군과 포격전을 했지만 화력에서 압도당하는 일이 벌어질 정도로 답이 없었다. 결국 [[대전 전투]]에서 미 24사단은 완전히 궤멸되었고, [[사단장]]인 윌리엄 F. 딘(1899~1981) [[소장(계급)|소장]]은 탈출을 시도하다가 북한군의 기습을 받아 '''낙오'''되었다. 어찌어찌 탈출한 딘 소장의 곁에는 극소수의 병력밖에 남아 있지 않았고, 이후 거진 한 달 동안 북한군을 피해 남하하다가 결국 전라북도 진안에서 '''북한군에게 생포'''당했다. 이 날이 8월 25일이었는데, 하필 그의 결혼기념일이었다. 이후 윌리엄 딘 소장은 '''3년'''의 세월 동안 북한군에게 포로로 잡혀 있다가 종전 후에 포로 교환으로 돌아온다. 여기서 얼마나 상황이 안 좋았냐면, 사단 예하 부대장이 미국 딘 사단장 바로 옆에서 전사하고 사단 휘하의 1개 대대가 전 대대원이 모조리 다 전사한 데다가 딘 사단장이 슈퍼 바주카로 직접 T-34를 격파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단장은 낙오되어 도피 중에 인민군에 잡혀버렸다. 그렇게 모두들 소련이 김일성에게 넘겨준 잉여 T-34/85 전차들 앞에서 "탱크!!"를 외치다 [[개박살]]나버렸다. 이 전투는 후퇴과정에서 6.25 전쟁 최초의 명예훈장 수상자가 나왔을 정도로 처절했다. 전투 공병대대 소속의 조지 D. 리비(Sgt. George D. Libby) 중사가 그 주인공. 부상병을 싣고 철수하던 공병대대는 북한군의 사격을 받았고, 리비 중사는 도로 옆 도랑에 엎드려 총탄을 피했다. 그리고 철수하는 포병 트랙터(M5 Artillery Tractor)를 세워 부상병들을 실은 다음, 유일한 그 운전병을 자신의 몸으로 감싸 피탄면적을 줄이고 철수시켰다. 그 와중에 리비 중사는 몸과 팔에 많은 총상을 입고 과다 출혈로 숨을 거두었다. 이때의 미군은 2차대전의 경험은 없고 무장은 고물인 주제에 2차대전의 승리자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은 가득한 저숙련 보병대였고, 당연히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